내가 어릴 적에는 하얀 증기를 내뿜으며 증기기관차가 다녔다 우리 동네는 넓은 들판을 지나 기찻길에서는 2킬로 미터가량 떨어진 곳이다 그래도 증기기관차의 기적 소리는 우리 동네까지 들렸다. 그 소리가 울리면 조무래기 또래들이 우르르 뒷동산에 올라가 멀리서 다가오는 증기기관차가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걸 구경을 하곤 했다. 기차는 하얀 연기만 남기고 꼬리를 감출 때까지 바라보았다. 기차가 사라지는 그곳은 어디일까 어떤 세상이 있을까 궁금했던 어린 날이다. 바로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이나 영주로 가는 경북선 기찻길이다. 그때는 가은이라는 곳은 깊은 산골짜기 까마득한 곳이었다. 연탄 탄광으로 유명하던 곳이 지금은 연탄 산업의 쇠퇴와 함께 기차역까지 폐쇄되고 말았다. 나도 한 번 밖에 안 가본 곳인데 50..
실로 50년 만에 가보는 사찰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에 있는 조계종 특별선원 봉암사이다. 예전에는 산문이 열렸던 곳이라 기차 타고 기숙사 학생들을 이끌고 여 선생님 두 분이 함께 가셨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가은 역에 내려서 봉암사까지 계속 걸어갔는지 버스를 타고 근처까지 갔는지 통 기억이 없고 '선생님, 아직 멀었어요?' 물어본 것과 ''조금만 가면 된다''는 대답만 듣고 무작정 걸었던 기억, 사복 입으면 안 되고 교복 입어야 했다. 사진을 보니 나도 내가 어디 있는지 한참 들여다 본 후에야 찾았다 지금 생각해도 가은역과 봉암사는 5 km 이상은 될 듯하다. 논과 논 사이 길을 걸어가는데 6월의 태양은 더웠다. 높은 산만 생각날 뿐인 곳이다. ~~~~~~~~~~^^ 1984년부터 조계종 특별선원으로 ..
예전에 왔을 때는 주차장이 그다지 넓지 않았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것이라고 진천읍 관광과에서미리 짐작하고 크게 만든 큼직한 주차장에 자동차가 빼곡하다.그날 어버이날이라 부부 쌍쌍의모습이 많고 자식들까지 같이온 일행도 참 많은 날이다.나만 홀로 왔나 싶은데 발걸음 빠르게농다리를 건너가려니 앞에 노부부의 모습이 보인다.남편이 부인의 손을 잡고 조심히 건너가자고 일러주는 아름다운 노부부 모습이다.진천 농교는 『상산지』와『조선환여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초 임장군이 축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천여년 세월을 버텨온 돌다리이며, 과학적 공법의 우수함을 짐작하게 할 만큼 특이한 양식으로 짜여진 이 다리는 전국적으로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소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나무위키 [천년이 넘..
아침에 운동하고 들어오니남편은 집 앞 학교 운동장에서뛰었다고 하며 집안 청소 중이다.'진천 보탑사에 꽃이 예쁘게 필 때가된 거 같은데~~~?''당연히 5월인데요, 비구니 스님들이으련히 예쁘게 잘 가꾸어 놓았을 라구요'~~~~~아침 먹고 가보자는 말도않고 붓글씨 좀 쓰고 싶은 날이라고딴전이다. '아, 그렇다면 혼자 다녀 오리다~'둘이 가도 좋고 혼자 가면더 좋고 보탑사며 농다리를 거쳐출렁다리까지 한 바퀴 돌고 오리라.제천에서 청주로 이사 후5년 간 출퇴근 하던 진천이다오늘은 어버이날이다.며칠 전 다녀간 아이들은 전화가 오고 카톡으로도 오고'어버이 은혜' 감사의 전화가 빗발친다보탑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아담한 사찰 내에 꽃들을 많이심어 가꾼 예쁜 절이라 내가 이따금찾아가기 좋아하는 절이다.근처에 수녀원이 있..
그날 개화 예술공원을 떠나 이름이 특이한 닭 볏 섬으로 가는 국도는 도로 공사가 많았다 거리는 멀지 않으나 길이 워낙 꼬불꼬불 꼬부랑길을 산 넘으며 무창포로 찾아갔다. 무창포는 해수욕장이니 패스. 그 옆에 닭 볏섬이 목적지다. 무창포는 퇴직 후 대전에 사셨던 아버지와 엄마가 칠게 잡이 하신다고 자주 나들이 가셨던 곳이다. 난 처음이다 어느 해 손녀들과 며느리를 태우고 무창포 바닷가 칠게 잡이 체험하러 나섰다가 차가 도랑으로 빠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모두 다치지 않아서 안심했던 기억만 남아 있던 무창포다. 어떻게 생겼길래~? 얼마 큼이나 닭 볏다울까? 도착 후 점심부터 해결. '가정식 백반'이 눈에 띈다. 남편은 또 투덜댄다 '김 한 조각도 없고, 작은 생선구이 한 마리도 없고~~~' '사 먹는 음식에 무얼..
ㅎㅎㅎ~~~~ 우리 부부가 여행을 떠나면 영락없이 비가 내린다. 지난번 구례순천은 내리 3일간 비가 내리더니 1박을 취소하고 2박 3일로 컴백홈이었다. 대천은 왜 또 비가~~ 논산 가고 집으로 오던 날 소낙비를 만나고 계룡 딸네 집에 하루 머물고 컴백홈~~ㅋ 츠암나~~~ 우리 3녀 1남은 '박 또비 여사'라고 놀리면서 낄낄대고 웃는다. 한 달 전에 예약하고 그날 비가 내릴 줄 어찌 안다는 말인가? 진짜 우리 부부는 비의 요정인가? 둘째 날 영덕에도 여지없이 비가 내렸다. 그래도 갈 곳은 다 간다. 바다로 나가는 길을 걷고 강구항으로 대게 먹으러 가야지~ㅎ 먹고 찌는 시간에 카페에서 잠시 시간 보내고 딸아이는 집으로 갔다. 중앙고속도로 올라서니 소낙비가 쏟아져서 앞이 잘 안 보일 정도 였다니 무사히 잘 도..
숙소 문을 열어보니 예전에 6인용 보다 조금 작고 좁은 느낌이다. 우선 남편은 대실망의 눈초리다. '뭐 이래, 코딱지 만하네'...ㅋ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 샤워시설이며 주방시설까지 다 갖추어 졌으니 밥 먹고 잠자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다만 4 인용이니 잠자리가 두 군데이다. 남편은 캠핑카의 로망을 미련으로 가지고 있어서 실체를 경험하고자 영덕 고래불 국민야영장 카라반 숙소를 예약하고 영덕으로 달려와 2박 3일에 도전이다. 몇 해 전 큰 딸과 한 번 다녀 온 곳이다. 223킬로란다. 청주 출발 당진영덕 간 고속도로를 2시간 이상 달려 목적지 도착이다. 입실 시간은 오후 3시이다. 우선 점심 먹을 식당을 찾으러 블루로드를 따라 대진항 쪽으로 가다 보니 작은 동네 횟집 식당은 여러 군데 있으나 간단히..
강경을 벗어날 때는 비가 좀 그치더니 논산 훈련소 앞을 지나면서 남편은 쳐다 보기도 싫다고 한다. '정문인데 이젠 좀 바라보아도 되지 않수?' 휙 ~고개만 둘러볼 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때 그 시절 때는 바로 1980년 그 해 여름 장마는 좀처럼 물난리가 없던 고향 땅에는 산사태가 나고 늦장마에 한참 피던 벼꽃이 물에 잠기어 흉년이 들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하필 논산 훈련소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 훈련소 앞을 지나는데 또 비라니. 야속한 세월이 주마등같이 떠오르고. 논산 훈련소 앞을 지나 에 도착하니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매표소도 문을 닫았다. 아뿔싸 비 내리는 오늘 수요일은 휴무라고 안내판에 씌어 있었다. 대천 출발 강경점심 후 논산 선샤인 랜드는 쉬는 날이고, ..
대천은 해수욕장 중심 도시여서 딱히 가 볼만한 곳을 찾아봐도 많지 않다. 우선 검색에서 찾아보니 미술관과 식물원과 카페와 석조물이 많다는 으로 오전에 출발이다. ●(임호영) 작가의 자전적 미술공간을 맛보기로 보고. ●(김준만 ) 작가의 알듯 모를 듯한 사이키델릭 한 조각품 감상. 이 또한 천천히 찬찬히 살피고 읽어 보는 전시회 관람이다. 그만 갈까 싶어 하는 남편은 내가 바삐 움직이는 방향으로 슬슬 걸어왔다 참 느릿한 남편... 나도 배워야 하나? 카페 겸 마른 꽃 리스가 많은 로 들어간다 바깥에서 보기는 깔끔하게 반짝거리지 않는 유리와 작은 카페 공간들이 즐비한 곳. 텅 빈 공원이 누구를 위한 것일까 잠시 느끼는 틈에 관광버스가 하나둘씩 몰려와 사람을 토해냈다. 휘황찬란한 리스와 마른 꽃 풀이 가득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