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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삶/인문

이충무공 참배하기

낭만할매 안단테 2024. 1. 2. 08:08



임진왜란 당시 명량대첩과
한산 대첩에 이은 노량대첩을
다룬 이순신 영화
<노량:죽음의 바다>에 큰 감동을 받은 남편이다.


이순신의 시를 붓글씨로 쓰기도
하고 이순신 공부로 보낸 일주일
이다.  연말에 아이들이 다녀
가며 각각 영덕에서 단양 도담
삼봉에서 일출이 없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우리 집 앞은 자욱한 안개로
청룡이 솟아올라도 안 보일
정도였다.



해가 중천에 오르자 안개도 조금
걷히고 가고자 했던 아산 현충사
로 출발했다.

두 달 전 친정모임을 했던
가을에 잠시 다녀갔으나 그때의
감회와 또 다른 느낌으로
이순신을 만나고 온 것이다.




[1598년(선조 31)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장렬한 전사를 하자 조정에서는 조문사절을 파견하였고 1599년 2월에 충청남도 아산시 금성산에 장사하였다. 그 후 광해 6년(1614)에 충청남도 아산시 어라산 현 위치로 모셨다. 묘역은 9,583㎡이며 묘 1기 외에 비석 1기, 상석(床石) 1기, 장명등 1쌍, 석상(石像) 1쌍이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묘는
아산 현충사에서 9킬로 정도
떨어진 아산시 음봉면에 있다

묘역 역시 성역화되어 굵은
홍송에 둘러 쌓인 야트막한
산이다. 주차장이며 묘역 관리
사무소까지 설치되어 관리인이
상주하고 있다.


정조가 내린 어제신도비



<어제 이순신 신도비 관련항목> 정조가 비문을 짓고 세우게 한 이순신의 신도비다. 왕이 신하의 묘비문을 짓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정조가 문효세자의 신도비와 의빈의 묘비를 지은 것은 확인되지만, 그 밖에 왕이 신도비문을 지은 예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순신을 존중했던 정조의 명으로 건립된 어제 이순신 신도비는 당대 최고 수준으로 제작되었다. 나라를 중흥한 공로의 기초가 된 것은 오직 이순신 한 사람의 힘이라 했던 정조의 마음, 그리고 자신도 나라를 중흥하고자 했던 정조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아산의 문화유산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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