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삶/국내여행

소풍 문 열리다-보령 충청 수영성

낭만할매 안단테 2025. 2. 26. 17:37


올해 첫 여행의 문을 열었다
작은 나들이 소풍이다. 느닷없이.


둘째 딸이 이사 후 맨 먼저 찾아왔다.
큰 딸과 아들이 가까운 곳에
살면서 수시로 들락거린 반면
둘째와 셋째네는 좀 먼 거리라
와서 도와주지 못하니 미안한
마음이었는지 정리도 덜 된 집에
오더니 '입주 청소' 후에도 손이 더
가야 할 부분을 찾아내고 세정제를
뿌려 샤워부스 유리를 더욱 반짝거리게 닦아주고 갔다.

가기 전에 하는 말 '보령에 숙소
잡았는데 바람이나 쐬러 나오세요'
라는 말에 '그래 좋아, 시간 좀
내 봐야겠네' 라는 말로 떠나 보냈던
둘째 딸이다.


하루가 지나고 세종 공주 청양을
거쳐 보령에 도착. 오천면에 있는
충청 수영성에서 만나기로 했다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은 서해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돌로 높이 쌓아 올린 석성(石城)이다. 조선 중종 4년(1509)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이장생(李長生)이 축성, 충청수영(忠淸水營)의 외곽을 두른 1,650m의 장대한 성(城)으로 자라(鱉) 모형의 지형을 이용 높은 곳에 치성(稚城) 또는 곡성을 두어 바다와 섬의 동정을 살폈 해안방어의 요충지였다. 사방(四方)에 4대 성문(城門)과 소서문(少西門)을 두었고, 동헌을 비롯한 관아건물 영보정(永保亭), 관덕정(觀德亭), 대섭루(待燮樓), 능허각(凌虛閣), 고소대(姑蘇臺) 등이 있었으나 허물어졌고, 서문 망화문(望華門)과 건물로는 진휼청(賑恤廳), 장교청(將校廳), 공해관(控海館)이 보존되고 있다. 방화문은 화강석을 다듬어 아치(Arch) 형으로 건립하여 발전된 석조예술을 볼 수 있으며, 오천항(鰲川港)은 백제때부터 중국과 교역하던 항구로서 회이포(回伊浦)라 불리었고, 고려시대에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하여 많은 군선(軍船)을 두었으며, 세조 12년(1466년) 수영(水營)을 설치, 충청수군의 최고사령부로 서해안을 방어하였다./다음 검색

보령 충청 수영성